[유일선 칼럼] 무역의 바다, 정복의 바다 그리고 오염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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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선 칼럼] 무역의 바다, 정복의 바다 그리고 오염의 바다
유일선 한국해양대 교수
  • 입력 : 2023. 08.23(수) 13:22
  • 배진희 기자
유일선 한국해양대 교수
동서 문명의 교류를 말할 때 우리는 중국의 비단길인 실크로드를 떠올린다. 이것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무역로의 상징이 되었고, 초원길, 사막길, 해양길로 확장되었다. 9세기에 이슬람 제국이 중동을 장악하면서 초원과 사막으로 통하던 육상길은 사양길로 접어드나 해상길은 발전을 거듭하였다.

이때 이 길을 이슬람 상인들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일찍부터 인도의 향신료를 유럽에 팔면 경제적 이익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겨울에는 동풍을 타고, 여름에는 서풍에 기대어 사람, 상품, 문화를 실어 날났다.

이 바닷길은 말레이시아 ‘말라카’ 항구를 중심으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지나 파푸아 뉴기니까지 이어진 거대한 항로로 발전했다. 15세기 초 명나라 정화 함대의 원정으로 중국, 한국, 일본도 여기에 포함됐다.

이렇게 수백년 동안 바닷길은 진화하면서 ‘무역의 바다’를 열었다. 당시 세계 최고 국제항 말라카의 시장과 거리에는 80여개 언어가 혼용되었고, 모스크와 교회 그리고 절이 나란히 세워졌다.

이런 국제화 물결은 ‘신드바드 모험’같은 대서사시를 낳았고, 모로코의 이븐 바투타는 인도, 수마트라를 거쳐 중국까지 간 여행기를 남길 수 있었다. 고려가요 쌍화점의 회회아비가 고려까지 와서 처자를 유혹한 것도 이런 국제화시대 산물이었다.

유럽인들도 이 바닷길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스만 투르크에게 길이 막히자, 15세기 말 포르투갈인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 최남단인 ‘희망봉’을 도는 새로운 뱃길을 연 것이다. 아프리카-아라비아-인도-중화로 연결되는 바닷길에 유럽이 참여하면서 세계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당장 포르투갈은 총포를 앞세워 말라카를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았다. 이어 스페인은 필리핀을,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영국은 인도를, 영국과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뒤늦게 ‘유럽화’에 성공한 일본은 조선을 식민화하였다. 중국은 유럽 여러 나라에 짓밟혀 반식민지가 되었다.

이제 상인과 물자를 실어 나르던 바닷길에는 병사와 대포가 오가고, 여러 문화가 만나서 교류하던 항구에선 약탈이 횡행하였다. ‘해양을 정복하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는 오만과 독선이 예찬되던 제국주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제국주의자의 지배와 착취는 세계를 빈곤과 고통에 빠뜨렸다. 식민지 확보를 둘러싼 그들의 쟁탈전은 1,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적 약탈방식은 파탄을 맞게 되었지만 그 후유증은 컸다.

21세기 이후 바다는 인류에게 전혀 새로운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태풍은 더 강해지고, 바다의 대기 순환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기후변화관련 정부 간 협의체(IPCC)’의 6차보고서(2021)는 자연환경 변화 중 기후변화는 인간행위의 결과라는 점을 과학적으로 자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세계 해양생물자원은 국제식량기구(FAO) 보고서에 의하면 인간들의 남획과 해양오염으로 21세기 초에 이미 총200개 어장에서 ‘완전 고갈’ 되었고, ‘기준이하의 자산’ 등급에 해당하는 비율이 75%이상으로 상승했다.

최근 일본정부는 오직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에 근거하여 핵물질 오염에 대한 ‘잠재적 위험’이 해소되지 않은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할 예정이다. 이와 같은 바다의 오염은 지구 구조자체를 흔들어 인간 생존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전조일지도 모른다.

세계화 이후 다시 대무역의 시대가 도래했다.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등 수많은 바닷길이 열리고 사방으로 사람, 상품과 문화가 교류되고 있다. 한국 역시 이 바닷길을 적극 활용하여 일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이 넘는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역사는 바다가 교류의 장이 되면 공동번영을 이룰 수 있고, 정복의 장이 되면 폭력적인 약탈의 전쟁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바다는 오염의 장이 되고 있다. 그 미래가 두렵다. 대포 대신 상품을 싣고 군함 대신 상선에 올라 무역을 선도하는 이 시대의 대상들과 바다를 ‘인류의 공동자산’의 가치를 가지고 인류 차원에서 해양질서를 모색하는 국가, 사회와 민간단체의 협력과 연대를 꿈꾼다.
배진희 기자 news@presszon.kr     배진희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