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필, 디카시의 창] 귀로 / 신옥비

디카시 광장
[조필, 디카시의 창] 귀로 / 신옥비
  • 입력 : 2026. 08.18(화) 06:19
  • 배진희 기자

촛불은 희미해지고
날개는 구멍이 났어요
이승의 약속은 끝내 오지 않았어요
아버지, 무지개 다리라도 내려주세요

■ 감상평 - 광주특별시디카시인협회 제공

신옥비 시인의 디카시 〈귀로〉는 시각적 이미지와 시적 언술이 절묘한 긴장감을 이루며, 삶의 피로와 초월에 대한 갈망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뛰어난 작품입니다.

1. 이미지(Image): 세속의 떼가 묻은 '추락한 천사'

사진 속 조각상은 본래 하늘에 속한 '천사'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천사는 신성하고 고결한 모습으로 날아오르는 대신, 땅 위에 지쳐 앉아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 마모와 오염의 시각화: 조각상 표면에 자욱하게 묻은 흙먼지와 거미줄은 천사가 지나온 '이승의 세월'과 그 안에서 겪은 삶의 고단함, 마모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 구도와 시선: 천사의 시선은 위(하늘)를 향해 있지만, 몸은 바닥에 착지하여 얼어붙어 있습니다. 이는 돌아가고 싶지만(귀로) 스스로 힘으로는 떠날 수 없는 한계와 상실감을 강렬한 시각적 잔상으로 남깁니다.

2. 언술(Statement): 고백적 어조와 상징의 깊이

텍스트는 단순한 사진 설명에 그치지 않고, 이미지 속에 숨겨진 서사를 일인칭 고백의 어조로 끌어올립니다.
• "촛불은 희미해지고": 생명력이나 희망의 불씨가 꺼져가는 종말론적/생의 후반부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 "날개는 구멍이 났어요": 사진 속 낡은 천사의 날개를 시적으로 재해석하여, 이승의 고통으로 인해 상처받고 기능(비상)을 잃어버린 영혼의 상태를 대변합니다.
• "이승의 약속은 끝내 오지 않았어요": 이 작품의 감정적 정점이 되는 구절입니다. 세상에서 기대했던 구원, 사랑, 혹은 행복이라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깊은 환멸과 고독을 드러냅니다.
• "아버지, 무지개다리라도 내려주세요": '아버지'라는 절대적 존재(혹은 근원)를 향한 마지막 간구입니다. 스스로 날아갈 수 없기에 하늘에서 내려주는 '무지개다리'라는 통로를 통해서라도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귀로)을 담아냅니다.

3. 이미지와 언술의 결합 효과

디카시 〈귀로〉는 '퇴색하고 상처받은 천사 조각상(이미지)'과 '이승의 삶에 실망하고 귀환을 꿈꾸는 절박한 기도(언술)'가 완벽한 대칭을 이룹니다.
사진만 보았을 때는 그저 야외에 방치된 흔한 조각상일 수 있으나, 언술이 더해짐으로써 그 조각상은 이승의 삶에 지쳐 고향(하늘)으로 돌아가길 갈망하는 우리 모두의 대리자로 거듭납니다. 씁쓸하면서도 아련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배진희 기자 news@presszon.kr     배진희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