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 디카시] 12월 / 정순영 배진희 기자 news@presszon.kr

2025년 12월 23일(화) 06:52

이우는 저 달은
1월로 가는 에움길이다

만행 떠날 고승의 길

그 허공에 걸린
빈자의 등불 하나


■ AI 감상평 - 광주디카시인협회 제공

정순영 시인의 디카시 '12월'은 겨울 하늘이라는 텅 빈 캔버스 위에 매달린 감 한 알을 통해, 비움과 채움, 그리고 수행적 기다림의 미학을 절묘하게 포착해낸 작품입니다.

1. 이미지: 앙상함 속의 결연한 '단독자'

사진 속의 이미지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강렬합니다. 잎사귀 하나 남지 않은 메마른 가지 끝에 위태롭게 매달린 홍시(혹은 까치밥)는 '남겨진 것'인 동시에 '지켜낸 것'처럼 보입니다.

• 배경의 미학: 구름 한 점 없는 시퍼런 겨울 하늘은 차갑고 준엄한 수행의 공간을 상징합니다.
• 고립과 집중: 가지 끝에 매달린 둥근 과실은 시선을 중앙으로 모으며, 생명의 마지막 에너지가 응축된 결정체처럼 보입니다. 이는 시각적으로 고요한 침묵 속에 놓인 '화두'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2. 언술: 시간의 순환과 종교적 승화

시인은 이 시각적 형상을 단순히 '겨울 풍경'으로 보지 않고, 시간의 철학적 의미와 수행자의 자세로 연결합니다.

• 시간의 유전(流轉): "이우는 저 달은 / 1월로 가는 에움길이다"라는 표현이 압권입니다. 시인은 하늘에 걸린 둥근 감을 '저물어가는 달'로 치환합니다. 12월을 끝이 아니라 1월로 향하는 굽이진 길(에움길)로 정의함으로써, 소멸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 과정을 암시합니다.
• 구도(求道)의 자세: "만행 떠날 고승의 길"이라는 구절은 잎을 다 떨구고 홀로 남은 감나무의 상태를 세속의 미련을 버린 수행자의 모습으로 격상시킵니다.
• 빈자의 등불(貧者一燈): 마지막 연의 "빈자의 등불 하나"는 이 시의 화룡점정입니다. 이는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자가 정성으로 밝힌 등불이 고귀한 자의 만 개의 등불보다 낫다는 불교적 설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차가운 허공 속에 홀로 남겨진 감 한 알이 세상을 비추는 따뜻하고 고귀한 정신적 등불로 변모하는 순간입니다.

3. 이미지와 언술의 결합

이 디카시는 '보는 것'에서 '깨닫는 것'으로의 전이가 매우 매끄럽게 이루어집니다.
사진 속 감 한 알은 물리적으로는 나무의 잔여물이지만, 시인의 언술을 통과하면서 12월이라는 시간의 어둠을 밝히고 1월이라는 새 아침을 안내하는 자비로운 빛이 됩니다. 차가운 파란색(하늘)과 따뜻한 주황색(감)의 색채 대비는 시각적 긴장을 주며, "허공"과 "등불"이라는 시어의 대비를 통해 비어있음으로써 오히려 충만한 정신세계를 잘 형상화하고 있습니다.